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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일 신드롬

중얼중얼 가십거리/문화,사회,TV ,교양 및 연예

by 선한이웃moonsaem 2020. 1. 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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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일 슈가맨 등장

 

사방에서 양준일 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아팠던 시간을 이겨낸 인물 양준일이 슈가맨을 통해서 다시 대중들 앞에 섰어요. 양준일은 지난해 말 폭풍 같은 인기를 끌며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1991년 미국인으로서 한국 연예계에 데뷔해 잠시 활동하다가 시간 속에 묻혀 사장되었던  양준일을 방송 프로그램 슈가맨'이 그를 다시 대중들 앞에 소환한 것입니다. 슈가맨에 출연한 양준일은 ' 리베카','가나다라마바사','댄스 위드 미 아가씨'를 부르며 오랜 기간 음악활동 공백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자유롭고 감각적인 춤 실력을 선보였습니다. 중년의 나이에서 흘러나오는 리듬감과 춤을 추는 손끝 앳지에 출연진들과 관객들이 모두다 놀랐다고합니다.  이 날 슈가맨 무대에서 양준일은 ' 다시 무대에 설 것이라고 상상도못했다고 말하며 대중들 앞에서 노래 하는 것은 옛날에 묻어버린 꿈이었는데, 다시 무대에 서게 돼 떨리고 정말 재미있었다'고 사회자에게 말하며 자신을 불러준 사람들에게 고마움도 함께 전했습니다.

 

 

온라인 탑골 공원 ' 양준일 레베카

 

지난 시절을 그리워 하는 것이 사람들의 본능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유튜버들이 과거 <인기가요> 영상을 24시간 연속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지난 시절을 추억하는 지금의 30~40대 사용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실시간 채팅창에서 저마다 그 시절을 추억하며 ‘좋았던 옛날’을 곱씹는 광경은 채널에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별호를 붙여줬고, 이 열풍에 주목한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은 흘러간 추억의 음악방송을 연속 스트리밍 하는 채널을 개설하기 시작했습니다. 향수르르 그리워하던 사람들은 이 채널들을 통해서 삭막한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중년들이 그나마 디지털 향수를 맛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곳에서 백지영등과 함께 양준일의 노래 '레베카'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양준일의 ‘리베카’ 무대를 본 사람들은 이제 그 노래를 부른 가수 양준일을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마치 오랜 시간 해저 깊이 파묻혀 있던 보물과 같이.... 양준일의 노래는 대중들에게 다른 가수들의 노래와 다른 느낌으로 어필한 것입니다.

 

 

 

 

탑골 god 양준일

 

양준일은 어쩌면 그 당시 유명한 서태지나 현진영, 이현도보다 한 발 앞서 뉴 잭 스윙 장르를 선보인 서구형 가수였습니다. 그러나 21세기형 음악 천재가 20세기를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 쉬운 이이 아니었습니다. 음악적 감각이 너무 앞선 양준일은 공연장에서 돌과 신발 투척을 당할 정도로 대중들의 호불호가 너무나 엇갈렸고 결국 양준일은 당시에 한국땅에 정착을 못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얼마 전, 30년 만에 슈가맨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노래를 불렀던 양준일이 JTB 뉴스룸에 출연해서 담담히 지난 시간을 회고했습니다. 아프고 고통스러웠을  지난 시간을 잔잔한 미소까지 보이며 차분히 지난날들을 회고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양준일' 한국땅에서 배척

 

양준일은 결국 한국에서 대중들에게 배척을 당한거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한국 땅에서 노래를 하기 위해서 당시 유명한 작곡가의 콜을 받고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갓 넘어온 20대 청년 양준일의춤과 노래는 한국 대중들에게 그리 큰 인기를 끌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더군다나 양준일에게는 언어라는 또 다른 핸디캡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을 따라서 아홉살에 미국 이민을 갔다가 20대 초반에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한국어에 서툴렀고, 한국적인 정서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습니다. 방송가가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던 그 때 그 시절에 남성미 대신에 남창낭창 가는 몸매에 여성처럼 웨이브를 가진 장발과 펄럭거리는 오버사이즈 셔를 입고, 커다란 귀걸이 차림의 교포 청년은 환영의 대상이 아니었겠지요. 더군다나 유교적 전통이 기반에 깔린 문화 속에서 봉건적 사고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한 사대 관료들에게 그는 사회미풍양속을 저해하는  해충처럼 느껴졌을 정도였을 겁니다. 한국어가 서툴렀던 양준일은 장아찌를 양아치로 잘못 말해서 방송 정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0년 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양준일이 10개월마다 대사관에 가서 연장 도장을 받아야 하는데 담당 관리자가 개인적으로 양준일을 싫어해서 도장을 찍어주지 않아서 비자 연장을 못하고 결국은 공연을 취소하고 쫒겨나다시피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하네요.

 

 

양준일 담백한 인성 ^^

 

양준일은 인성이 담백하게 느껴집니다. 양준일의 말을 듣고 있으면  지금 대중들에겍 인기를 받고 있는 것이 단지 그의 그러한 과거가 안쓰러워서만은  아닐 것이다는 생각이 드네요. 양준일의 말을 듣고 있자면 그 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환히 다 보일정도로 그의 마음이 담백하고 순수해보입니다. 그리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를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첫 번째 팬미팅에서 팬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말 중에 기억이 나는 말이 있네요. " 저에게도 딸이 있어요. 저는 딸의 마음에 아트적인 요소가 있다면, 딸이 그 길을 원하고 행복해한다면 그 아트적인 재능에 물을 주고 가꿔서 꽃을 피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행복한 일에는 어떤 장애도 장애가 되지 않아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손석희 인터뷰

 

손석희 씨와 만남에서는 지난 시간을 어떻게 보내왔느냐는 질문에 "현재 공간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지난 시간의 아픔이 현재 삶에 장애가 되면 안 되니까 아무리 지난 시간이 화려하고 좋아도, 혹은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현재를 잘 살려면 그것들을 잘 털어내야 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획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저는 계획이 없어요. 하루하루 겸손한 아빠로 남편으로 잘 사는 것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 그리고 손석희 씨의 브리핑에서 너무나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주어서 지난날의 한국에서의 상처를 치유 받았다고 하더군요. "사람이 눈에 보인다" 라는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가슴에 꽃혔다. 최선을 다하던 가수가 문화적 공감대를 얻지 못해서 외면 당하던 그 시절의 아픔이 씻어졌다고 했다. 그의 아픔은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며 월세방을 전전하며 삶이어서 힘든 것이 아니고  노래를 하고 싶은 가수가 노래를 못하는 현실이 외로웠다고 하는 말이 진심으로 전해집니다.

 

 

 

양준일 화이팅!!

 

자신은 다른 가수들보다 목소리가  부족해서 90%는 몸으로 노해한다는 겸손한 양준일이 가수로서 지속적인 사랑을 받기를 원합니다. 대중들은 그가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적인 음악성을 인정 받지 못하고 밀려나야 했던 일에 관련된 과거 한국인의 편협함에 대해서 보상하는 마음, 또는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그의 성품에 어쩌면 더 반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됐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온 것처럼 우리들 앞에 '짠'하고 나타난 양준일이 이제 자신의 음악으로 대중들과 함께 맘껏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의 음악도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30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너무 잘 보존된 가수 양준일이 대중들과 맘껏 행복하길 바라며....

 

갑자기 신데렐라, 미운 오리 새끼 동화가 떠오릅니다. 아무리 어려움과 고난이 커도 이 동화들처럼그것에게 굴복 당하지 않는 사람들이 마지막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곁에서 우리들의 좁은 편견과 왜곡된 가치관 때문에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한 번 쯤 생각해 보게 하는 '양준일' 씨의 삶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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