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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적끼적....

by 선한이웃moonsaem 2020. 9. 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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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립니다.

회색빛 하늘이 인상을 쓰고 잔뜩 볼멘 얼굴을 하고 있더니 

오후부터 앞마당 웃자란 풀들 사이로 소나기가 죽죽 내립니다.

어두웠던 하늘이 비바람에 씻긴 후  세상은 얼마나 더 깨끗해질까요?

 

 

 

 

소나기 오는 날 버섯 꽃이 피었어요

휘몰이 장단으로 거칠게 내리는 소나기를 보니 마음이 시원해지네요.

죽죽 내리는 비가 세상에 오염된 내 마음도 씻겨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식물들이 비를 맞아 더 파래진 오솔길에서 버섯 꽃을 보았네요. 

난생 처음 보는 버섯 꽃이에요.

자세히 살펴보니 버섯과 여린 식물의 콜라보네이션이었어요

 

 

                                                          

 

 

참 , 마음이 이쁜 동거입니다.

종을 초월한 동거, 세상에서 내가 보 중 가장 따듯한 동거...

여린 풀이 몸체보다 큰 버섯을 품에 안고 마치 자기가 피운 꽃인양 행복해 보입니다.

얼마나 꽃을 피우고 싶었으면 버섯을 품어 꽃처럼 피웠을까요?

볼수록 아름다운 동거입니다.

 

비 속에서 버섯을 보고 한참을 서 있는데  "그동안 나는 내 곁의 사람들과 어떤 마음으로 삶을 나누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마음과 나의 소유, 나의 영역을 얼마나 타인에게 조건 없이 내줄 수 있는지요.

돌아보니 부끄럽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향해 비웃으며 손가락질합니다.

크리스천이 사는 방법은, 오직 섬김과 나눔 그리고 사랑이라고 성경에서 가르치는데..

지금 교회는 악의 근원지처럼 타락해 가는 것일까요?

영성을 잃은 교회는 단 한 사람도, 세상도 바꿀 수 없습니다.

교회는 사회 운동도 정치를 하는 곳도 아닙니다.

오죽했으면 마틴 루터도 종교 개혁을 해야 했을까요?

다른 '루터'가 나와야 할 때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은,

이 식물들처럼  너도 더불어 함께 살아가라고 이 버섯 꽃을 내게 보여주셨나 봅니다.

성경에서도 사람을 향한 중요한 계명 중에 "너희는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씀이 있어요.

 크리스천의 삶은 적자생존이나 약육강식의 생존경쟁 방식이 아닌 말씀 안에서 함께 섬김과 나눔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공존공생의 아름다운 동거인 것일 텐데...

며칠 전 한 사람의 관계를 싹둑 잘라버린 일이 생각나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산책 길에서 돌아 오는 중에

시멘트로 포장된 좁은 골목길 전봇대 아래서 또 다른 아름다운 동거를 하고 있는 까마중과 맨드라미를 보았아요.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오늘은 나를 향해 작정하신 계획이 있나 보네요.

열린 마음으로 인정 있는 하나님 자녀답게 살라고요.ㅠㅠ

고향집 뒤꼍 장독대 곁에서 

풍성한 가지를 펼치며 주렁주렁 열리던 까마중 열매와 

고향 동구 밖을 지나 황토색 토담 아래 사열하듯 줄지어 서서 수탉 같은 벼슬을 세우며 동네를 지키던

붉은 맨드라미 꽃이었어요.

볼수록 신기한 동거의 모습을 이곳에서 또 봅니다.

 

 

 

 

 

맨드라미 까마중이 연리지가 되었어요

시멘트 바닥에 있는 바늘구멍만 한 땅에서.

틈새도 찾을 수없는 저 비좁은 곳에서

두 식물은 어떻게 함께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며 아름다운 동거를 하고 있었을까요??

다투거나 싸운 흔적도 없이 저렇게 아름답고 튼실하고 풍성하게....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연리지를 연상시키는 풍경입니다.

 

 

 

 

 

 

정말로 사랑한다고요? 사랑했다고요?

두 식물을 보고 있으려니 앞으로는 차마 내 입으로 '사랑'이라는 말을 함부로 말하지 못하겠어요.

지난 시간 속에서 내가 함부로 뱉었던 '사랑'이란 말도 부끄럽기만 합니다.

오늘 두 식물을 보면서 라이너 마리아의 '사랑'이란 시를 다시 되뇌며

나의 편협했던 '사랑'들을 반성하고 다짐합니다.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부러뜨려주소서

나는 손으로 하듯,

내 가슴으로 당신을 끌어안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막아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 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

 

 

회색빛 하늘이 낮게 내려 않은 오후에 끼적끼적 반성하는 마음으로 주절주절 끌적거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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