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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회장 별세 / 가족사

중얼중얼 가십거리/정치

by 선한이웃moonsaem 2020. 1. 19.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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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회장, 정주영 회장 그리고 신격호 명예회장 별세하다. !!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서울아산병원에서 별세했습니다. 향년 99세인  신격호 명예회장은 1921년 남 울산에서 태어나서 1948년 일본 도쿄에서 롯데홀딩스의 전신인 ㈜롯데를 창업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으며, 유통 관광·화학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롯데그룹을 재계 서열 5위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의 별세로 우리나라 제1세대 경제 부흥의 주역들인, 삼성의 이병철 회장, 대우의 정주영 회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롯데 신격호 회장이 우리 곁을 떠나갔네요. 우리는 자주 말합니다. " 인생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간다고.." 그 많은 재산들 남기고 알몸으로 왔던 세상에서 떠날 때는 수의 한 벌 입고 가는군요.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는 이들은 어떤 심정일까요?

 

 

별세한 신격호 명예회장의 부고 소식에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9일 입장문을 통해서 "반세기 넘게 한국 경제 성장과 산업 발전에 헌신한 신격호 명예회장이 별세한 데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신 명예회장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선구자였고, 창업 1세대 기업인으로서 선구적인 안목과 헌신을 통해 롯데를 국내 최고의 유통·식품 회사로 성장시켰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또 전경련은 별세한 신 명예회장이 서비스·관광·석유화학 분야까지 사업의 범위를 넓히며 다양한 영역에서 대한민국 산업의 기틀을 닦았다고 말했습니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사업보국의 신념을 바탕으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에 아낌없이 투자한 열정과 헌신이 초석이 돼어 산업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의 산업이 재건되고 경제가 부흥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불편해진 이론과 우리나라의 관계를 돌아보며  "최근 한일 관계가 어렵다"며 "'대한해협의 경영자'라는 별칭이 부을 만큼 한일 양국간 경제 교류에 힘써준 신 명예회장의 타계는 우리 경제의 큰 아픔과 손실이 아닐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별세한 신겨호 명예회장에 관련해 깊은 애도를 표했습니다. 또 지난 1967년 한국 롯데제과 설립 당시 "품질 본위와 노사협조로 기업을 통해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겠다"라고 밝혔던 고인의 말을 떠올리며 신격호 명예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본받겠다고 말했습니다. 경총은 "신격호 명예회장은 해방 직후인 1948년 일본에서 롯데그룹의 창업 기틀을 다진 이후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기업 보국(企業報國)의 기치 아래 모국 산업에 투자했다"며 "국내 유통·관광 산업의 현대화를 구축하는 등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이어 "별세한 신격호 명예회장이 롯데그룹을 성장시키면서 보여준 열정과 도전정신은 지금까지도 많은 기업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남은 자들이 "우리 국가 경제와 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말도 잊지않고 덧붙였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 역시 신 격호 명예회장의 별세 소식에 깊은 애도를 드러냈다. 대한상의는 "고인은 선구적 투자와 공격적 경영으로 국내 식품.유통.관광 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며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빌며 별세한 신격호 명예회장의 유가족과 그룹 임직원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라고 밝혔다.

 

 

롯데 그룹 경영 분쟁 !!

하지만 별세한 신격호 명예회장의 말년은 그의 화려한 젊은 인생에 비해 그다지순탄치 않았습니다. 2015년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이 터지면서 롯데 그룹은 큰 위기를 한 번 맞았고, 이 과정에서 신격호 명예회장은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국내 계열사 이사직에서도 퇴임하면서 형식상으로도 완전히 경영에서 손을 뗐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경영권 갈등 속에 90대 고령에 수감 위기에 처하는 등 수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오늘 별세한 신격호 명예회장은 두 아들과 함께 경영비리 혐의로 2017년 12월 징역 4년 및 벌금 35억 원을 선고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 구속만큼은 면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6월 법원 결정에 따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레지던스에서 소공동 롯데호텔로 거처를 옮긴 이후 그의 건강은 더 악화됐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신격호 명예회장은 19일 오후 4시 29분께 노환으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100세의 나이에 별세를 했습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 여사와 장녀 신영자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차남 신동빈 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 등이 있다고 합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부인인 일본인 하츠코 여사는 신 명예회장의 건강이 악화됐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주부터 오늘 별세할 때까지 곁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신격호 회장 복잡한 가족사 !!

 

별세한 신격호 명예회장은 한일 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동안 세 차례에 걸친 결혼으로 가족사가 다소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는 한국인 부인 2명, 일본인 부인 1명 등 3명의 부인 사이에서 2남2녀를 두었습니다. 3차례 결혼을 통해서 한국인 부인 2명, 일본인 부인 1명서 2남2녀를 두게 된것입니다.

 

별세한 신격호 명예회장의 첫째 부인은 고(故) 노순화 씨이며며- 신 명예회장이 19살이던 1940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합니다.신격호 회장의 복잡한 가족사는 신 명예회장이 일제 강점기였던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시작됐 습니다. 당시 노 씨가 장녀를 임신 중이었지만 신 명예회장은 ‘가난에서 벗어나 반드시 성공해야한다’는 각오로 일본으로 떠난 것입니다.

 

장녀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신격호 명예회장이 일본에 있을 때 태어나 부친 없이 어머니 노 씨와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고 합니다. 별세한 신격호 명예회장은 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컸던 탓에 생전에 큰딸을 유독 애틋이 여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신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현지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으며.1946년 와세다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히카리(光) 특수화학연구소를 설립, 비누 등 유지제품을 제조하다가 껌을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껌 사업이 확대되면서 이후 ㈜롯데를 설립하고 종합제과 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고 신격호 명예회장은 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쳐나가고 있던 1952년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 씨와 결혼을 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하츠코 씨가 일본 명문가의 딸이어서 이후 일본 내 사업에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고도 알려졌습니다.

 

하츠코 씨는 롯데그룹 경영권을 놓고 분쟁을 벌인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형제를 낳았습니다.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일본식 이름은 시게미쓰 히로유키(重光宏之), 시게미쓰 아키오(重光昭夫)다. 두 사람은 출생 이후 성년이 될 때까지 줄곧 일본에서 자랐다네요.

 

신동빈 회장은 1985년 일본 대형 건설사인 다이세이(大成) 건설 오고 요시마사 부회장의 차녀인 오고 마나미(大鄕眞奈美) 씨와 결혼했으며 마나미 씨는 일본 황실의 며느리 후보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고 합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1992년 재미동포 사업가의 딸 조은주 씨와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오늘 별세한 신격호 신 명예회장은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 한국에서 사업을 전개하기에 이릅니다다. 1970년대에는 하이틴 스타이자 미스 롯데 출신인 서미경 씨와 사실혼관계를 맺었으며 그 때 두사람은  30살이 넘는 나이 차였다고 합니다. 서미경 씨는 한동안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았으며 신격호 명예회장과 서미경씨 사이에서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이 태어났습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10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 과정에서 동생들과 갈등을 빚으면서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습니다. 사업 초기 한국에서는 에 남동생들과 함께 롯데를 운영했으나, 분쟁이 이어지며 동생들이 모두 각자의 사업체를 갖게 됐고 신선호 일본 산사스 회장을 제외하고는 둘째 동생 신춘호 농심 회장, 넷째 동생 신준호 푸르밀 회장 등이 모두 롯데를 떠나서 각자 재계에서 자리를 잡고고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별세한 신격호 명예회장 장례는 롯데그룹장으로 4일간 치러지며, 이홍구 전 국무총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명예 장례위원장을, 롯데 지주 황각규·송용덕 대표가 장례위원장을 맡는다고 합니다. 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2일 오전 6시입니다. 발인 후 22일 오전 7시 서울 롯데월드몰 8층 롯데콘서트홀에서 영결식이 열리고 장지는 유족의 뜻에 따라 공개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제 평안한 안식을....

글을 마치며 이런 노랫말이 떠오릅니다. "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해탈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물욕을 초월하고 사는 것이 짧은 인생, 행복하게 살다 가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가난한 자의 변명일지 모르겠지만요. 우리 나라의 경제 부흥에 큰 몫을 한 신격호 명예회장이 이제 평안한 안식에 들어가시길 바라며 글을 쓰다보니 오늘날 신격호 명예회장을 있게 하고 롯데가를 큰 기업으로 세운 롯데 껌의 향수가 떠오르네요. 롯데껌 광고 노래 들어 볼께요.

 

'롯데껌' 광고송 들으시며 그 시절, 추억 속으로....

 

 

 

 

 

 

다음은 신격호 명예회장의 연보입니다.

◇연보

▲1922년 10월 4일 경남 울산 출생

▲1942년 관부 연락선을 타고 도일

▲1944년 커팅 오일 제조 공장 설립

▲1946년 와세다대 이학부인 와세다 고공(高工) 야간부 화학과 졸업

▲1948년 껌 사업 성공 후 일본 롯데 설립, 회장 취임

▲1959년 롯데상사 설립

▲1961년 롯데부동산 설립

▲1967년 일본 롯데아도, 한국 롯데제과 설립

▲1968년 일본 롯데물산, 주식회사 패밀리 설립

▲1972년 한국 롯데리아 설립

▲1973년 롯데호텔, 롯데기공, 롯데전자 설립

▲1974년 롯데칠성 음료 설립

▲1975년 롯데 자이언츠 설립

▲1976년 호남석유화학 설립

▲1978년 롯데삼강, 롯데건설, 롯데햄, 롯데우유, 롯데 서비스 설립

▲1979년 롯데쇼핑 설립

▲1980년 한국후지필름, 대홍기획 설립

▲1982년 롯데 자이언츠를 프로야구단으로 변경, 초대 구단주

▲1985년 롯데데이터센터 설립

▲1987년 롯데엔지니어링 설립

▲1989년 잠실 롯데월드 개장

▲1995년 관광산업 분야 최초 금탑산업훈장 수훈

▲1998년 호텔롯데· 롯데쇼핑 대표이사 회장,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 임명

▲2011년 롯데그룹 총괄회장

▲2014년 롯데리아·롯데로지스틱스 비상 무이사 퇴임

▲2015년 롯데상사 사내이사 퇴임, 일본 롯데홀딩스 명예회장 추대

▲2016년 롯데제과·호텔롯데 이사 퇴임

▲2017년 롯데쇼핑 ·롯데건설·일본 롯데홀딩스·롯데알미늄 이사 퇴임, 롯데월드타워 개장

▲2018년 한국 롯데그룹 명예회장 추대

▲2019년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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